있으나 마나한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만만치 않은 본인부담금···현실성 없는 내구연한

ⓒ한국지체장애인협

보장구 때문에 적금에 빚까지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제도가 장애인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장애인 보장구의 가격은 해마다 오르고 있지만 보건복지부가 10년 전 고시한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기준금액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기준금액을 전동휠체어 209만원, 전동스쿠터 167만원, 수동휠체어 48만원으로 정하고 장애인에게는 이 금액의 80%,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100%를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10년째 변동 없는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제도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뇌병변장애인 A씨는 전동휠체어 구매를 위해 적금을 들었다. A씨에게 필요했던 비용은 총 600만원. 전동휠체어 가격 500만원에 손을 사용할 수 없어 전동휠체어를 발로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개조비 100만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하지만 A씨는 187만원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척수장애인 B씨는 수동휠체어를 구매하기 위해 빚까지 졌다. B씨가 구매하려던 수동휠체어는 무려 400만원. 하지만 B씨가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고작 38만원이었다.

욕창예방과 골반교정에 도움이 되는 수동휠체어가 필요했던 B씨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고민이 됐지만 건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매를 결정했다.

잦은 고장으로 장애인 부담 늘어

장애인 보장구 내구연한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장애인 보장구의 내구연한은 전동휠체어 6년, 전동스쿠터 6년, 수동휠체어 5년이다.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용 전지의 내구연한은 1년 6개월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장애인 보장구 내구연한이 현실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체장애인 C씨는 “전동휠체어를 구입한지 4년이 지나면 타이어, 컨트롤러, 모터 등 여기저기 고장이 자주 난다”며 “고장이 잦다보니 외출시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뇌병변장애인 D씨는 “소모품인 전지의 경우 내구연한이 1년 6개월이지만 중고 배터리가 돌아다니는지 교체를 해도 배터리가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실제로 장애인들의 장애인 보장구 사용 현황을 잘 파악해서 제도 개선에 반영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장애인보장구 수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E씨는 “장애인 보장구 수리를 위해 찾아오는 장애인들 가운데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부품 교체가 없는 고장의 경우는 무료 수리를 해주지만 어쩔 수 없이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 장애인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태조사에서도 문제점 여실히 드러나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제도의 문제점은 장애인보장구건강보험급여현실화추진연대(이하 장애인보장구연대)가 지난 4월 보장구 사용 장애인 8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실태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보장구는 전동휠체어 37.8%, 수동휠체어 31.0%, 전동스쿠터 31.5% 순으로 나타났다.

장애등급은 1급이 63.5%, 2급이 21.9%로 중증장애인이 전체의 85.4%를 차지했다. 직업은 무직이 54.2%로 가장 많았고 월평균 소득은 50만원 미만이 37.8%,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30.8%였다.

이는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주로 중증장애인이며 전반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장구 구입시 200만원 이상의 본인부담금을 내는 장애인은 무려 전동휠체어 27.8%, 수동휠체어 42.7%, 전동스쿠터 3.8%였다.

250만원 이상의 본인부담금을 내는 장애인도 전동휠체어 16.5%, 수동휠체어 36.4%로 나타났다.

보장구의 사용기간은 3년 이상 5년 미만이 33.7%, 1년 이상 3년 미만이 23.3%로 조사됐다. 현재 보장구 내구연한에 비해 실제 사용 기간은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응답자의 59%는 ‘보장구 내구연한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이 가운데 46.9%는 ‘보장구 내구연한은 평균 3년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 보장구가 3년이 지나며 잔고장과 마모가 심해져 수리비가 많이 든다’, ‘체형이 변형되어 보장구가 몸에 맞지 않는다’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전문가들 ‘제도 현실화 필요’ 한 목소리

전문가들은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제도 개선 현실화 방안을 제시했다.

5월 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인 보장구 건강보험 급여 현실화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목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동기 교수는 “2005년 보장구 급여 기준액과 내구연한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일한 것은 큰 문제”라며 “이는 문제의 차원을 떠나 일종의 직무유기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도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면밀한 실태조사와 장애인 당사자 참여를 기반으로 한 정책연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급여기준액, 내구연한, 대상품목 등의 확대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애인보장구연대 황백남 소장은 “보장구는 고착화된 장애의 치료나 재활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닌 장애인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장애유형과 특성, 생활환경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은 “독일에서는 장애인 건강 유지를 통한 의료비 절감을 위해 장애인에게 생활용, 운동용, 샤워용 등 3개의 휠체어를 준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 건강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쓰면서도 장애인에게는 그렇지 못하다”며 “예방차원의 보장구 급여 체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보조기구서비스지원센터 김종훈 센터장은 “보조기구 사용자들에게 보조기구 지원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유지·관리 서비스이지만 국내에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지원되고 있다”며 “유지·관리 서비스센터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서정현 사무관은 “장애인 보장구 급여 현실화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앞으로 보장구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의견을 수렴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